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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예술의 공동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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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호2. 마당극의공동창작과연출_컨설팅

admin 0 3185 2015-12-10 22:40:56

마당극의 공동창작과 연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심으로

 

 

류이

(주안미디어축제 예술감독)

 

1.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발상

학산마당극놀래는 인천 남구의 21개 동마다 동을 대표하는 마당예술 동아리를 조직하고 마당극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큰틀을 갖고 있다. 2015년 5월 18일에 인천 남구청장으로부터 21개 동의 상황과 주요 문제점을 브리핑 받았는데, 주안8동에 옛 화장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화장터가 있었던 자리를 싹 밀어내고 지금은 진흥아파트가 들어서 있다고 한다. ‘화장터라...?!’ 화장터가 사라져 버렸으니 인간과 귀신의 경계 표지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듣자마자 아주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았다. 마당예술 강사들과 함께 작품을 준비하는 토론 과정에서도 소재로 적극 추천하였고 강사와 동아리 회원들로부터 낙점을 받았다. 특기해 두어야 할 점은 주안8동 이랑도서관의 마당예술 동아리가 인형극을 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귀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탈이나 인형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더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옛 화장터를 소재로 하는 귀신 이야기가 쉽게 낙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별다른 활동이 없었고 동아리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형편이었던 주안8동 동아리로서는 다양한 취재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던 터라 바로 동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사와 스텝진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승을 떠돌던 귀신들이 명절에 만나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나오고, 모여서 이야기하는 이미지를 떠올리자 곧바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용으로 하자고 바로 결정되었다. 나는 아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제목으로 삼고 공동창작을 진행하면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불도저 개발주의에 대항하는 주제로 좋은 결과가 얻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2. 기획과 뼈대 구성

화장터가 어디냐? 지금 남아있나? 남구청장이 사는 진흥아파트 자리였다.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귀신들도 고향에 돌아와서 잔치를 즐기는 한가위에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는 거리 귀신들이 화장터 근처에서 우연히 모인다. 변해버린 세상과 인심을 욕하다가 마지막에는 주안8동에 복을 주고 잘 되도록 빌고 마무리한다.

주안8동의 연출을 맡고 있는 김범수 예술강사가 아주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죽은 동물 귀신들도 등장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정말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납작 고양이가 주차전쟁에 뜨거운 여름날 주인 차 밑에서 졸다가 치여서 죽었는데, 나와서 항의하는 것이지. 주차문제에 대해서 말이야.” “저기는 승학천 미역 감던 곳인데? 요기쯤 있지 않았을까? 알쏭달쏭 하단 말이야.” 물고기가 저기 낙동강을 휘돌아 한강을 타고 올라왔건만 자기가 놀던 개천을 찾을 수가 없다. “헐떡헐떡~!”

 

3. 마당놀이냐 마당극이냐 - 리얼리즘의 문제

소재가 결정되고 창작 토론도 몇 차례 하고 이제 곧 작품을 본격적으로 정리해 나가야 할 시점에 나와 남기성 스토리 감독이 ‘공동창작 컨설팅’을 했다. 그때가 2015년 8월 18일이었다.

나는 “주안8동에 복을 주고 잘 되도록 빌고 마무리한다.”는 것이 물론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자그맣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통과의례로 주워섬기는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보다는 부르도저로 싹 밀어버려서 귀신들이 도저히 찾아올 수가 없도록 만드는 ‘싹쓸이 개발주의’에 대한 귀신들의 통한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설정을 완전히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가 잔뜩 난 귀신들이 주안8동 주민들에게 마구 욕을 퍼붓는 것이다. 어 이것들이 “귀신들 자리를 깔고 앉아 살고 있네? 너네는 조상도 없느냐?” 우리 자식들은 어디 있나 한탄하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다가 주안8동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옛 기억을 들추지만 기왓장 하나 남지 않아서 1년에 한번 오는 안마당으로부터 뿌리채 뽑혀버렸던 것이다. 불도저가 나와서~ 부릉부릉 밀어내기도 하고, 젊은 인간들이 지나가면서 귀신들을 치고 나간다. 그나마 기억조각을 찾게 해주던 마지막 표지물(기념물)까지도 사라졌다. 크억~! 사람들만이 아니라 귀신들까지도 쫓겨난다.

이것은 마당극의 기본적인 예술철학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고 주민들의 공동창작 경험이 없고 첫 작업이라서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앞으로의 방향

이 작품의 배경은 주안8동 진흥아파트에 있었던 옛 화장터이자 오늘의 남구 혹은 인천이다. 그것은 옛 마당과 오늘의 마당이 겹쳐 있고, ‘죽음의 마당’과 ‘삶의 마당’이 또한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 강한 장소성 혹은 지역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2015 학산마당극놀래의 작품 가운데서 매우 독특한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김범수 연출가의 고양이 귀신, 물고기 귀신 아이디어가 작품을 제대로 살려내는 힘이 되었고, 커다란 장대 인형의 조형물과 한지 옷이 귀신 분위기를 한껏 키워내었다. 다만 연출가가 아직 마당극 연출 경험이 적어서인지, 배우가 움직이는 선이 무대극처럼 처리되어서 아쉬웠다. 귀신들이 관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휘젓는다던지 관중들과 주고받는 말이나 동작 혹은 싸움이 벌어졌다면 판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보 배우들과 함께 공동창작을 해서 작품을 올리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거기까지 신경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본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주안8동 마당예술 동아리가 계속 고치고 덧붙이고 새로 써서 뛰어난 마당극 작품으로 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귀신은 우리의 조상 죽은 이의 영혼이다. 저승도 못가고 이승으로 돌아올 데도 없는 영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음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영혼은 태아 때는 부모의 자궁이 안마당이다. 그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 심리가 안정된다. 태어나서 크면서 안마당을 키워간다. 그것이 안과 밖을 경계 짓는 마당(장소)이다. 좌표와 마당은 다르다. 인간이 주체로 서기 위한 두 발을 딛고 선 마당(땅)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리적으로는 기억이다. 우리의 뇌는 늘 기억을 다시 되돌리고 되찾는 일을 하면서 안마당을 키워간다. 나는 1년에 한번쯤은 젊을 때 놀았던 광화문의 피맛골에 가서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싶다. 태어난 마을에 가서 태생 공동체에서 대보름날 달집 태우기도 하고 싶다. 그것이 다 사라졌다. 그래서 현대인은 뿌리뽑힌 인간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라지고 나의 안마당은 희미해진다. 나의 의식은 정주할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해서 늘 허공을 헤맨다. 뿌리부터 불안정하다. 내 기억 속의 존재(안마당)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뿌리 기억은 현존으로부터 다시 기억으로서의 권능을 부여받고 흔들리던 안마당은 안정된다. 뿌리 기억의 존재가 부정당하면 흔들리던 나의 안마당은 부정당한 만큼 허물어져 내린다. 그에 따라 심리적으로 약해지고 불안해지는 만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늘 불안한 존재가 된다. 개발주의를 표상하는 불도저는 건물을 허물어뜨리고 땅만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문화를 야금야금 먹어치워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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