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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예술의 공동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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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호1. 또 다른 시작에 선 <학산마당극 놀래>

admin 0 2996 2015-12-08 22:03:36

또 다른 시작 선에 선 <학산마당극 놀래>

남기성

학산마당극놀래 스토리 멘토

 

1. 생활문화 혹은 커뮤니티 아트의 부상

 

생활문화, 혹은 커뮤니티 아트가 문화예술의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이다. 대규모 공업생산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과 개발은 이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점에 봉착되어있다. 이제 물질적 생산을 토대로 한 성장의 시대를 지나, ‘문화’로 대변될 수 있는 일상적이고 무형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삶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기위한 다양한 시도와 함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지방자치 시대 20년을 맞아,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지역문화진흥법이나 문화예술교육지원법 등 관련법 체제가 확립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각의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 있는 문화와 가치에 대한 발굴과 개발, 지역의 공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의미부여, 문화를 통한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참여자의 문화예술의 향유기회를 확대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참여자들 간에, 나아가 참여자들과 지역사회, 국가나 세계와의 소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참여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과 이웃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보다 낳은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꿈과 동시에 이를 성취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천의지를 획득하기도 한다. 이는 생활문화예술, 혹은 커뮤니티 아트의 활동이 “예술과 학습, 사회변화가 함께하는 교차로”이기 때문이다. 이지점이 기존의 동호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적 취미활동과의 변별점이며 또한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할 지점이다.

이제 시민은 더 이상 일방적인 문화예술의 소비자도 아니며 예술가의 대상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들 스스로 예술의 창조자이며 기획자, 소비자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보다 낳은 삶을 성취하고 꾀할 수 있으며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주변의 환경을 하나하나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이제 3년째 지속된 학산마당극제 역시 이러한 큰 흐름 속에 있다. 특히 올해 펼쳐진 마당극제는 지난해 미디어 축제의 일환으로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행해진 것과 달리 동축제라는 틀을 빌어서 ‘분산적’인 방식으로 펼쳐짐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참여자의 삶의 공간으로, 일상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공동체와 소통, 삶의 현장을 중시하는 마당극과 ‘마당’ 개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잘 접목될 수 있으며, 특히 지역의 주민들이 함께 작품 창작과 공연을 이루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일구어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학산마당극제가 일상적 삶의 공간인 동네 마당에서 펼쳐진 동축제와 적극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커뮤니티 아트로써, 새로운 생활문화예술의 전형을 창출할 수 있는 씨앗을 보여주었다.

2. 새로운 과정들1 - 확장된 소재와 장르

 

우리의 전통탈춤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탈난 것을 탈잡아 탈을 쓰고 놂으로써 이를 해소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일련의 마을 굿이요 공동체 전체의 축제이자 연행예술이었다. 전통탈춤을 기반으로 생성된 마당극 역시 이시대가 가지고 있는 ‘탈난 것’들을 주 소재로 삼아 만들어지고 기획되고 연행되었다.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게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학산마당극 놀래는 각 동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극의 소재로 삼아 다룰 것을 적극 권장하였다. 특히 올해는 그저 권장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마당극제 주관단체인 학산문화원에서 누구보다 남구의 현안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구청장과의 인터뷰와 기타의 리서치를 통해 각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주민간의 갈등의 요소 등을 파악하여 파견될 강사들과 사전에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소재 찾기의 막연함에 약간의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러한 준비과정에 대한 결과로 작년과 달리 올해의 작품에는 작 동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작품의 소재로 부각되었다. 행정 동의 통합에 따른 주민의 갈등을 풍물굿을 중심으로 풀어낸 용현1·4동의 <도깨비들의 ‘난장’>이나 아파트 단지를 둘러친 담장으로 인한 이웃 단지와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관교동의 민요극 <관교동 로미오와 줄리엣>, 도시 공동화의 문제를 다룬 도화2·3동의 <도화‘섬’>, 재개발 등에 따른 이웃 간의 갈등을 동네의 내력과 함께 들어내고자 했던 숭의1·3동의 <109번지 이야기>, 팍팍한 현실에 이웃조차외면하고 사는 모습을 극복해 보자는 의지를 담은 숭의4동의 <너희 집 밥그릇이 몇 개냐?>, 좁은 이면도로와 골목길 주차 등에 따른 이웃 간의 마찰을 다룬 주안2동의 <일방통행> 등이 이러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동네의 전설을 주 소재로 다루면서 역시 재개발 문제를 언급한 주안3동의 민요극 <사미골 소리여행>이나 쓰레기 수거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진 주안1동의 <문전수거> 역시 마을 주민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더 나아가 주안4동의 창작탈춤 <통장 동원령>은 ‘심지어’ 학산마당극제에까지 동원될 수밖에 없는 통장들의 현실을 들어냄으로써 행정조직의 말단을 이루고 있는 통장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까지 들어내어 많은 울림을 주었다. 이외에도 동네의 내력을 사람과 물고기 등의 귀신을 통해 풀어낸 주안8동의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양한 동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아직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이웃,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서로와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토대를 만들어 주리라 생각되며 “예술과 학습, 사회변화가 함께하는 교차로”로서 진정한 공동체 문화예술의 하나의 전범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 이러한 소재를 담아내는 그릇 또한 작년에 비해 매우 다양해졌다. 연극과 창작탈춤, 인형극, 풍물과 난타, 밴드, 합창, 민요, 춤, 뮤지컬, 퍼포먼스 등 현대의 공연예술에 활용되어지는 거의 모든 장르가 망라된 듯 한 모습이다. 이는 기존의 강사진에 더불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사들이 새로이 합류한 결과로 주민들에게 다양한 예술체험의 기회를 제공함과 아울러 마당극제의 저변을 늘려 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3. 새로운 과정들2 - 공간의 변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연립주택과 상가주택, 단독주택들이 밀집해있는 주택가 안의 작은 공원 안에는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극한 노인분들까지 어림잡아 서너 세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공원 한쪽에 임시로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는 그날 마을 축제에서 공연할 공연자들의 리허설이 한창이었고 무대 옆쪽에는 인터넷 생중계를 진행할 마을 앵커와 방송팀이 카메라 위치를 잡고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10여명의 스텝들은 그들이 행사 시작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을 위하여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동네의 꼬마들은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로 작은 공원 안을 헤집고 다녔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려면 한두 시간 시간이 남아있음에도 벌써 객석으로 준비된 행사용 프라스틱 의자에 가족 단위로, 혹은 이웃끼리 모여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대 뒤쪽으로 가보니 출연자 대기실로 준비된 텐트 안에는 그날 마당극을 공연할 출연진들이 얼굴에 분장을 한 채로 살짝 긴장된 모습으로 모여 있었고, 그 옆 자그마한 빈터에서는 동네 새마을부녀회 회원으로 짐작되는 분들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전을 부쳐내고 있었으며 동네 남정네 몇몇이 작은 탁자에 모여 앉아 갓 구운 부침개에 막걸리 잔을 돌리고 있었다. 공간만 인천이라는 대도시의 한 동네였을 뿐이지 마치 몇 년 전 참관했던 정월 대보름 마을 굿을 준비하는 전라도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몇몇 기술적인 문제와 기타의 우여곡절 끝에 행사 시작 시간이 되고 준비된 100여개의 객석이 모자라 뒤쪽으로는 많은 동네 사람들이 선채로 공연을 맞이하였다. 이윽고 이제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한 주민풍물패의 길놀이에 뒤이어 몇몇 인사들의 한편으로 지루한 인사말이 끝나고 곧바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전혀 훈련되지 않은, 살짝 어눌하기도 한 동네 앵커의 멘트는 무척이나 정겨웠다. 전체 행사 시간에 쫒긴 무대감독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앵콜 곡까지 마무리한 아마추어 밴드는 주민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특히 민요를 중심으로 마을의 전설에 오늘날 마을의 이야기를 얹어서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마당극은 긴장한 출연자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역시 동네 주민들이 전문가의 지원으로 함께 만든 몇 편의 마을극장을 통해 남구의 주민들이 더 살갑게 다가오기도 했다. 행사진행이 늘어지고 중간에 비가 오락가락하여 일부 주민들이 자리를 뜨기는 하였지만, 공연행사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무리까지 참으로 신명나고 재미진 마을 축제요 노소동락(老少同樂) 대동굿판이요 마당판이었다.”

 

이번에 마을 릴레이 축제로 펼쳐진 마당극제의 어느 한 곳에 대한 본인의 일종의 리뷰이다. 이렇듯 이번 마당극제는 예년과 달리 각 동의 공원이나 주차장 등 ‘마당’에서 펼쳐졌다.

이러한 ‘마당’은 우리의 전통연희의 공간이자 애초에 마당극이 추구해온 공연공간이다.

 

1895년 국내최초의 근대식 공연장인 *<협률사>가 인천에 문을 열기 전까지 우리의 전통연희는 그것만을 위한 전용공간(극장)이 없었다. 이는 우리의 공연예술이 발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연희의 독특한 특징과 발달 과정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의 공연공간은 특별한 무대 장치나 공간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일상의 공간, 삶의 공간을 탈 일상, 공연, 상상의 공간으로 바꾸어 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의 시공간은 그것 자체로 절대적인 시공간일 수 없다. 공간은 물리적 좌표로 표현될 수 있는 절대적 공간이 아니다. 마을입구나 마을 안에 위치한 당산나무는 일상의 시간에서는 한여름 노동에 지친 몸에 그늘을 씌워주는 쉼터이기도 했으며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교육의 공간이기도 했다.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회의장이며 수확물을 타작하는 타작마당이기도, 어스름 저녁 두레꾼들의 술자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정월 대보름이나 10월 상달, 마을굿이 펼쳐지는 시기가 되면 당산나무에 금줄 하나 걸어 놈으로 해서 신과 인간이 교류하는 신성한 공간,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공간으로 탈바꿈 하였다. 마을 굿이 끝난 이후에는 마을의 풍물패가 판굿놀음과 잡색놀음을 펼치는 연희 공간으로 다시 변화한다. 일종의 ‘사이’ 공간으로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공간이다. 궁중이나 지방관청 등의 연희 공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궁궐의 정전이나 지방관아의 동헌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연희가 펼쳐지는 극장으로 바뀐다. 어디 그뿐이랴? 부처님을 모시는 신성공간인 절집의 대웅전은 곧잘 훌륭한 범패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마당’으로 대표되는 민간의 연희 공간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상의 시공간에서 연희의 시공간, 신성한 시공간으로’ 탈바꿈되는 마당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우리의 일상의 삶과 붙어있다. 근대의 극장은 인공적인 건축구조물로 일상의 공간과 인위적인 벽을 두르고 연희자와 관객에게 일상의 삶으로부터 분리된 시공간을 ‘강제’ 한다. 반면에 우리의 마당극장은 연희자와 관객 모두가 자신의 노동과 삶을 영위하는 일상의 공간에 놓여있음으로 해서, 관객의 시각장(視覺場)에 공연은 물론 그들의 일상의 공간이 함께 들어온다. 배우의 목소리는 일상의 소리와 함께 관객의 귀에 들어온다. 이로 인해 관객의 공연에 대한 몰입이 때로는 방해받기도 하고 ‘극적 환상’이 이루어지기 힘들기도 하다. 반면에 이렇듯 공연에 동참하는 모든 이의 감각이 일상의 시공간에 열려져있음으로 해서 극장에서의 그것보다 오히려 현실성을 강하게 띌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일상적 삶을 소재로 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그들의 염원과 바람을 담아내는 연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이제 마당에서 펼쳐지는 연희는 그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의 이야기가 중심 소재가 된다. 이는 단지 마을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두레패 연희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연희를 통해 삶을 영위했던 뜬패인 사당패들이나 걸립패들도 한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그 마을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마을의 사정이나 문제들, 특히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을 파악하여 그들의 연희 내용에 이를 삽입하여 마을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심지어는 마을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을 망신을 준다거나 벌하기 까지 하였다고 한다. 한사람의 뛰어난 작가나 연출가에 의해 쓰이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삶과 소망과 눈물과 웃음을 담아냄으로써, 그러한 시공간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응집력은 더욱 다져질 수 있었으며 참여자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안온함을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당극 하면 흔히 이야기 하는 집단적 신명이나 현장성, 즉흥성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지 작가나 연출가, 혹은 배우의 단순한 재담이나 테크닉을 통한 관객에 대한 ‘유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펼쳐진 학산마당극제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공연공간을 이러한 ‘마당’ 공간으로 - 물론,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낮은 높이의 가설무대를 설치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마당의 연장선으로 봐야한다. - 이동시킨 것이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이틀간 집중해서 주안미디어 축제의 일환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 물론 경연 마당으로 참가 가능한 팀 중 19개 팀이 오전 오후에 나뉘어 주안역 광장에서 경연마당을 펼쳤지만 - 23일간 각 동의 마을 축제와 결합하여 공연되어짐으로써 마을 주민들과 더욱 밀접한 결합을 시도 하였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적극적 소재계발과 더불어 보다 밀접하게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였다.

 

“작년축제는 주안역 앞길을 막고 크게 하다 보니 동네 주민이나 친구가 다녀갔는지 조차 알 수 가 없었지만 올해 마을 릴레이 축제를 하면서 내가 하는 공연을 많은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어 진심 기뻤다.”

 

“우리 동네에서 공연을 하다보니까 작년에 함께 준비했었던 통장님들도 보러 오셔서 더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시고 관객 역할도 해주셔서 우리도 공연을 더 힘이 나서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준비한 것을 작년에 했던 통장님들에 이어 함께 소통할 수 있어서 마을공연이 의미가 컸다.”

 

“통장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는데 공연을 본 주민들이 통장님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 이제 통장님들을 만나면 좀 다르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이상은 올해 마당극제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평가회 때 했던 말들이다. 참여자들은 주안역 앞의 광장과 같은 널따란 차로를 막고 가설무대를 설치하여 주로 익명의 관객들 앞에서 펼친 공연과는 사뭇 다른 성취감과 감동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지 출연자뿐만 아니라 객석에 앉아있었던 관객들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즉, 앞서 이야기 했듯이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낯익은 생활공간에서, 그것도 늘 마주치고 인사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했을지 모르는 이웃 아줌마가 약간은 어색한 몸짓과 노래와 대사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펼치며 무대 위에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다. 이러한 공연상황에서 참여자도 언급 했듯이 공연자와 관객의 ‘소통’은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이렇듯 마을의 작은 마당으로 공간을 옮겨 펼쳐진 이번 마당극제는 마당극이, 또한 학산마당극제가, 더 넓게는 생활문화예술이나 커뮤티니 아트가 추구하는 공동체 내부의 나눔과 소통에 한 걸음 더 다가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준비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하였으며 이를 어떻게 풀어 가는가가 앞으로 학산마당극 놀래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도 여겨진다.

 

 

4. 남는 문제들

 

이글의 앞부분에 짧게 이야기 했지만 이제 생활문화나 커뮤니티 아트는 현 정부의 지역정책과 문화정책의 기본 틀일 뿐 아니라 전 지구적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취미모임과는 다른 내용과 방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면서 함께 논의하고 토론 하는 창조하고 소통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공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들 스스로 예술 행위의 창조적 주체이자 향유자로 위치 짖게 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자신의 재발견 및 표현, 타인과의 소통, 공동의 문제 해결까지로 나가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아직도 농어촌지역에는 일부분 이러한 문화가 남아있지만(예컨대 정월 대보름 중심으로 행해지는 마을 단위의 당산굿이나 지신밟기 등) 특히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친 도시 지역은 주로 해당자치구의 문화센타나 주민센터에서 행해지는 강습위주의 방식이외에 참여자의 적극적 자발성과 주체성이 전제되는 이러한 모임이나 흐름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학산마당극 놀래는 아직은 학산문화원이라는 조직의 주도아래 행정조직의 도움을 받아 치러지고 있지만 이는 아직 문화매개자가 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문화의 확산을 위해 어쩌면 필요불가결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구되어지는 부분은 이러한 매개자를 비롯한 휴먼웨어의 양성에 관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적 접근이다. 학산마당극 놀래를 진행하기 위해 각 동의 동아리별로 마당지기를 뽑아 모임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부여함과 동시에 사무국과 동아리와의 소통의 통로로 삼은 것은 적절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몇 번의 사전 모임에도 불구하고 마당지기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관점들에 따라 그들이 동아리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올해의 경우 다소 급작스럽게 작년과 다른 방식인 동별 축제로 학산마당극 놀래가 기획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동단위 행정조직인 동사무소와 자치조직인 주민자치회와의 소통 부족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한 듯하다. 마당극을 포함한 생활문화나 커뮤니티 아트가 새로운 흐름으로 주민들 속에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마당지기 뿐만 아니라 관련 행정조직 구성원 역시 일정정도 문화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과 사업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교육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 과정이다.

 

특히 각 동의 동아리와 만나 직접 예술작업을 진행하는 강사들에게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더더욱 필요하다. 수업참관 과정에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아직도 강사와 동아리 구성원간의 쌍방향 소통보다는 강사가 주 발신자로, 참여자들이 수신자로 위치하는 모습이 많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아트의 강사에게는 일방적으로 테크닉을 전수하는 강사로의 역할 이상, 특히 모임을 이끄는 이끔이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커뮤니티 아트에서 초기과정으로 강조되는 강사와 참여자, 그리고 참여자간의 ‘접촉’의 과정이 아예 생략된다거나 혹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많았고 창작의 초기 과정인 ‘리서치’의 과정 역시 종종 생략되고 강사가 혼자서 대본을 작성해 오는 모임도 여럿 있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방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짧은 기간 안에 작품을 만들어 무대화해야 한다는 압박과 재정문제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강사들 역시 새로운 시도로서의 학산마당극 놀래 사업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맞는 방법론을 계발하고 공유하기 위한 강사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재교육 시스템의 구축 또한 시급히 마련되어야 된다고 보인다.

문화예술은 인간만의 고유의 영역이다. 문화예술행위의 주체인 참여자들과 이들에게 예술적으로 도움을 주는 강사,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매개자로서의 학산문화원과 마당지기,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행정담당자들. 이들 간의 지속적인 소통과 교육 등을 통하여 목표의식이 공유되었을 때 학산마당극 놀래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 문화예술 활동이 남구의 주민들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다음으로 소재 찾기의 문제이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올해에는 학산문화원에서 사전에 각동의 현안들을 조사하여 각 동아리의 작품 내용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과정이 오히려 강사나 참여자들의 시야를 한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화원에서 조사해 놓은 자료가 알게 모르게 가이드라인 같이 작용을 한다거나 한편으로 참여자들이나 일선 행정조직 혹은 자치위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크게는 서로간의 정보교류와 사전 소통의 부족과 작업시간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정리된 현안들을 활용하여 참여자들과 적절한 접촉과 리서치과정을 거쳤다면 보다 낳은 결과물을 내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그 동네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강사의 입장에서 자신이 다루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조사하고 참여자의 태도와 관점을 살피는 등의 리서치 과정은 놓쳐서는 안 될 필수적 요소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커뮤니티 아트에서, 마찬가지로 학산마당극 놀래가 지향하는 것은 공동창작이다. 물론 강사가 이 과정에서 큰 축을 담당하겠지만 공연이라는 결과물과 함께 만들고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우리는 그러한 좋은 예를 작년 주안3동 기흥마당 할머니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대 공연이전에 과정을 통해 참여자 스스로 변화되는 과정을 기흥의 할머니들은 보여주었으며 지금도 그 연장선에서 기흥주택의 할머니들의 평상은 할머니들의 ‘마당’으로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예컨대 음악 편집이나 복잡한 소도구의 제작 등등)이 아니라면, 몇몇 동에서 그러했듯이 탈이나 의상, 소품 등등도 함께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탈을 쓰고 나갔을 때와 누군가가 만들어준 탈을 쓰고 나갔을 때와는 느낌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옛날의 탈꾼들은 각자 자기의 탈은 자신이 만들어 썼다. 그러했을 때 사소한 소품 하나하나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가 생성될 것이다.

 

 

5. 나아가며

 

지방자치 시대 20년을 맞아 경상남도지사와 성남시장, 그리고 서울특별시장이 지난 몇 년간 언론을 통해 자주 드러나고 있다. 이를 통해 새삼 지방자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정치적 분위기로는 아직 먼 듯도 보이지만, 이미 20세기 지구를 두 쪽 냈던 거대담론은 더 이상 지구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뿐더러 세계화의 구호 역시 그 반대지점인 지역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한편으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급속도로 개별화고 단절된 개인들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타인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연대하고 소통해야할 필요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자신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마을의 환경과 개개인의 미시적 삶과 질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개개인의 삶의 질은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신화는 고도성장기에나 가능했던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안의 ‘나’이며 이웃 간의 연대 없이는 이제 내 삶의 질조차도 담보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속한 국가나 사회의 최소 단위이면서, 나와 가족의 일상, 삶의 질을 담보하는, 내 몸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 관한 강조는 당연한 것이다. 이제 나는 개별적 존재로서 독립된 주체로서의 ‘나’로는 만족할 수 없는, ‘마을-안의-나’인 존재 일 수밖에 없다. 학산마당극 놀래, 생활문화, 커뮤니티 아트는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나 스스로 예술의 창조자이자 기획자, 향유자로 거듭나기이며 ‘마을-안의-나’로서의 ‘나’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더 나아가 세계와 이웃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마을-에로(향하는)-나’의 존재로 거듭나기를 촉발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부산출신의 정치국이란 사람에 의해 세워진 인천의 <협률사>는 황실극장으로 1902년 서울 정동에 세워진 동일한 명칭의 <협률사> 보다 7년이나 앞서 세워진 극장이다. 이후 협률사는 1915년 주인이 바뀌고 애관극장이란 이름으로 새로 개관하여 주로 연극공연과 영화를 상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 연극사나 한국 극장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동의 <협률사>를 최초의 극장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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