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당극의 재창조를 기다리는 지금 이 ‘마당’
마당극의 재창조를 기다리는 지금 이 ‘마당’
2013년 12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마당극 ‘허생전’(연출 남기성, 예술감독 채희완)이 공연되었다. 1981년 서울시가무단이 공연한 작품을 새로 만든 것이다. 또 ‘허생전’은 1976년 서울대 총연극회와 탈패가 만나서 <마당극>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서 공연한 작품(기획 류이인열)이다. 연극과 탈의 만남이 바로 ‘마당극’의 출발이었다.
37년이 지나 초기 주역들이 마당극이 사라진 수도권에서 마당극을 다시 공연한 것은 ‘마당극의 부활’ 신호탄이 아닐까.
70년대 이후 한국의 문화운동은 연행 중심으로 다양한 흐름을 거쳐 왔다. 창작극, 창작탈춤, 마당극, 노래극, 촌극, 현장극, 대동놀이. 판굿, 민족극, 교육극, 생활극 등 다양한 이름의 공연양식이 그 상황의 중심에 있었다.
그 이름만큼 강조점에 각각 차이가 있지만, 그 모태는 한결같이 ‘마당’이다. 한국의 연행 문화 전체에서, ‘마당’은 내용과 형식 모든 측면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개념이었다. 또한 ‘마당씨어터 madang theater’로 세계화된 말이다.
‘마당’은 장소다. 마당극은 마당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을 뜻한다.
서양 근대 연극의 액자무대(프로시니엄 proscenium arch)에서 벗어나, 생활공간인 야외 마당을 공연장소로 택한 연극이다. 장소가 열린 공간 즉 마당인 탓에, ‘현장성’ ‘집단성’ ‘개방성’ ‘광장성’ ‘접근성’ 등의 속성이 나타난다.
마당극은 생활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고(현장성), 생활공동체나 집단이 공동창작하고 집단적 신명으로 즐기고(집단성), 배우와 관객이 넘나들고(개방성). 사적인 이야기보다 공적인 주제들을 주로 다루고(광장성), 조명과 무대장치 의상 등에 큰돈이 들지 않는 쉽고 편한 놀이 형식(접근성)이었다.
마당은 공간이면서, ‘지금여기’를 뜻하는 시공간이다. ‘지금 이 마당에’라고 표현되는 우리말처럼.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담아낸 4차원의 장(場 field)이 바로 마당이다.
마당 공간 속에 시대상황이 담겼다. 마당의 시공간성 때문에 마당극에는 당대의 시대상을 그린 이야기가 손쉽게 담겨졌다. 상황을 반영하고, 그 상황과 상호작용하여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계기가 되는 장이 바로 마당이었다.
마당의 시공간적 성격에서 파생된 다양한 정서를 전문가들은 ‘마당정신’이라 표현했다.
30년 동안 한국의 문화운동은 마당정신을 다양한 그릇에 담아왔다. 극예술의 종합적 성격 탓에 마당극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매체가 결합되고 분화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양식(genre)들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마당정신은 마당 형식을 택하지 않는 영역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문화가 직업인 예술인들은 각각의 전문매체로 마당정신을 수용하고 재창조해 나갔다. 각각의 매체마다 마당정신에 기초한 예술집단들이 만들어졌고, 때로는 활발하게 때로는 뜸하게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민족극운동협회 등으로 결집된 대부분의 문화매체가 마당정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런 조직과 무관한 사람들조차 마당정신에서 파생된 다양한 기법과 부산물들을 다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화를 매체로 활용하는 생활인들은 87년 6월항쟁을 정점으로 학생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 산업화 시대 민주화운동의 각 분야에서, 마당문화를 ‘맞서싸움(대항)’의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했었다. 세계화 정보화된 21세기 요즈음에는 시민운동, 지역운동, 사회적 경제운동의 각 분야에서 마당문화를 ‘건설(network화)'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다.
30여년 전부터 시작된 마당극, 그 마당극에 담긴 마당정신을 지금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시대 상황 때문이다. 맞서싸움의 정서와 더불어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정서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최근 민주화는 표면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는 민주화된 체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더욱 철저한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의 민주화로 더 깊이 심화되어야만 하는 시대상황이 되었다. 이런 시대 상황은 풍자와 해학의 비판정신과 더불어 소통과 통합의 창조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새로운 문화 매체를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생활의 변화 때문이다. 편중된 도시화, 첨단화된 정보화의 여파로 사람들의 생활은 개인화되고 생활공동체는 미성숙한 상황이다. 무한경쟁과 양극화로 내몰리는 생활환경과 더불어 개인의 생활을 표현하는 문화만 IT기술로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시민예술과 시민문화, 마을 중심의 공동체 예술과 공동체문화, 온라인 네트워크와 균형을 이루는 생활네트워크, 기존의 마당예술이 개발한 기법의 한계에 갇혀 맴돌고 있는 마당문화 등 마당극 등, 마당정신이 딛고 서야할 새로운 생활세계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심도 필요하다.
마당문화를 전문적으로 창조 및 보급하는 마당패는 지역적으로 산재되어 있고, 양식적으로도 개별화되어 있다. 서울 지역에는 전문 마당패가 없고, 전국적으로도 매체융합을 주도하는 마당패가 없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렴 및 확산하는 구조, 마당극을 중심으로 매체 융합 및 분화를 반복하는 재생산 구조가 무너져 있다. 그 결과 마당극 및 마당문화를 필요한 하는 시대상황 및 생활세계에 능동적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마당놀이패는 과거의 동력으로 버티고 있을 뿐, 미래를 위한 원동력은 미약하다. 즉 젊은 층의 유입이 없다.
마당극을 중심으로 구심이 될 만한 전문놀이패가 있어 그동안의 변화들을 수렴하고 융합 재창조하여 새롭게 확산하는 매듭, 즉 새로운 파동을 시작되는 ‘마디’가 필요한 지점이다.
지난 30년 마당극과 마당문화 부문에서 선구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그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아본다. 약 300년 전의 전통문화를 재창조하여 마당극과 마당문화가 30년 전 출발했듯이. 30년 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마당극과 마당문화가 새롭게 출발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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