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을공동체마다 생기 있는 문화마당이 열리는 날
아, 이번 마당극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렀네요. 세상만사, 자기 집에서 출발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집은 쉼표’라 했습니다. 마을은 바로 우리들의 집, 우리들의 쉼표 같은 곳입니다. 쉼표 없는 삶은 한없이 서글플 뿐입니다.
마을은 시작이며, 전환을 위한 매듭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마을 속에서 숨 쉬던 놀이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생긴 엉성한 아파트 마을은 구석구석 구멍이 나, 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쉬면서 다시 출발할 힘을 얻는 곳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주목한 지역자치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마을 만들기’ 마을공동체 복원사업에 나섰습니다.
책을 읽자, 인사하자, 나누자, 만나자, 고치자 각종 사업들을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우리 같이 놀자!” 즉 ‘놀자’는 이야기입니다.
잘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앞장서는 바람에 노는 것이 빠진 일하는 것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을 단위에서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마을 기업을 만들어 경제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방자치제 선거를 중심으로 좋은 마을 일꾼을 뽑는 정치적 공동체 개선도 중요합니다. 나눔과 봉사, 공유 협동 등으로 사회적 공동체 복원에 나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갈이 놀며 만들어지는 문화 공동체입니다.
‘마을 친구’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청년들은 동네친구가 없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 짬 내어 같이 밥먹고 술 먹을 친구가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사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시골마을 향우회는 있어도, 도시마을 향우회는 없습니다.
도시의 마을은 고향 같은, 쉼표 같은, 친구 같은 공간이 아닙니다. 향우회도 없는, 떠나면 보고 싶지도 않는 도시의 마을이 무슨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마을 만들기’니 ‘공동체 복원’이니 하는 것들은 흩날리는 바람이 될 뿐입니다. 바람이 모일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바람 바램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마당’입니다.
소통과 통합의 장이 바로 마당이고, 마을에도 이런 마당이 있어야 합니다. 마당이 마당 다우려면 ‘문화’ 즉 마당놀이가 있어야 합니다. 도시의 마을 마당에는 ‘시장 마당’만 있습니다. 마당 안에서도 이익을 챙기려는 계산만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마당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엉성한 도시에도 바람과 물의 흐름이 모일 수 있는 곳 ‘마당’을 만드는데, 마당극이란 마당문화들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던진 것입니다.
마당극과 마당문화의 힘과 미학이 ‘만남’ 즉 소통과 공감에 있음을 마당극 전문가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마당공연예술가였던 임종우(주안미디어축제 기획단)단장은 인천 남구에서 ‘마당문화 특강’을 먼저 열고, 마을 단위로 마당극을 전파할 수 있는 예술 강사 육성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지역축제와 결합하여 인천 남구만의 특색 있는 마당극 중심의 도시 문화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마당극’에서 중요한 것은 마당극 전문가 누구나 마당의 힘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어느 한 곳에서도 그 마당의 힘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임종우단장의 계획처럼 인천 남구에서부터 그 마당의 힘이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당이 가진 비판과 건설의 미학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정말 정말 당부 드리고 싶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의 마당극운동, 마당문화운동, 생활문화 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을 반복하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무엇이냐면.
‘매너리즘’(영어: Mannerism, 이탈리아어: Manierismo 마니에리스모)의 함정입니다. 제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주의하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대학가에서 대동제라는 축제가 유행했는데, 왜 지금은 모두 껍데기만 남았느냐는 부분입니다. 대동제가 싹틀 당시 유행했던 대동놀이가 줄다리기였습니다.
첫해는 이전에 보지 못한 줄다리기가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줄을 같이 꼬는 노동도 신선했습니다. 신기한 체험이지요. 이듬해 또 똑같은 줄다리기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해의 경험담을 떠드는 재미가 있어 그런대로 만족했습니다. 작년만한 감동은 아니지만, 나름 의미있고 재미있는 축제였습니다. 또 한해가 지나, 줄다리기 판이 열렸습니다. 첫 생각이 ‘아니 또’였습니다. 이제는 좀 지겨워진 것입니다. 맨날 똑같은 반찬을 먹는 기분이 든 것입니다. 도대체 줄다리기를 꾸민 놀이패들은 할 줄 아는 게 줄다리기 밖에 없나, 화가 났습니다. 불만이 가득해진 것입니다. 또 한해가 지나 줄다리기를 한다고 하니, 축제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취직시험도 바쁘고.
이것이 대학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창조적인 양식도 똑같은 것이 반복되면 재미없어 지는 법입니다. 이를 예술 사조에서 매너리즘이라 부릅니다.
생활 현장의 다양한 마당문화 매체들은 이런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많은 것들입니다. 익숙한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만 놀게 되면 곧 식상해지는 법입니다. 맨날 보는 이웃들이 해마다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긋지긋해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지역축제가 열립니다. 한군데서 성공한 축제양식은 다른 곳에서 복사하기 바쁩니다. 어슷비슷한 내용의 축제들이 너무 많아 지역축제는 인기가 별로 없습니다. 마당극과 마당문화를 도입하려는 인천 남구의 시도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식상하지 않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게 하는 데는 정말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마당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마당문화 전문가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요리사가 필요한 이유, 정성이 필요한 이유와 같습니다. 레시피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같이 놀아보자’는 발상은 너무나 좋습니다. 같이 놀 수 있는 이웃들이 생기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더 나아가 몇 년이 지나도 신선한 놀이가 제공된다면 인천남구의 축제는 세계적인 축제로 이름날 것입니다. 아,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나도 놀고 싶다 !’
공동취재단 하영권/김보경/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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